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이 밝혀낸 소름 돋는 시간의 진짜 정체

그런데 만약, 이 우주의 가장 깊은 밑바닥을 들여다보았더니 애초에 ‘시간’이라는 부품 자체가 쏙 빠져있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태어나고 늙어가며 죽음을 맞이하는 이 모든 과정이, 사실은 텅 빈 스크린 위에 띄워진 정교한 홀로그램 같은 ‘환상’에 불과하다면요?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공상과학 소설입니까. 당장 1시간 뒤에 약속이 있는데 시간이 없다니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고대의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조차 "아무도 묻지 않으면 시간이 뭔지 알 것 같은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도저히 모르겠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천재 물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이 미친 질문에 인생을 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우리가 믿고 있던 현실을 산산조각 내버릴 만큼 기괴하고도 매혹적입니다.
자, 지금부터 우주의 근원, 그 시간이 얼어붙은 심연을 향해 떠나는 지적 스릴러 영화 한 편을 상영해 드리겠습니다. 팝콘 하나 챙기시고, 편안하게 따라와 주세요.
- 제1막: 철학자의 치명적인 일격, "시간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야기의 첫 번째 챕터는 1908년, 영국의 관념론 철학자 맥타거트가 던진 폭탄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아주 우아하지만 소름 돋는 논리로 객관적인 시간의 숨통을 끊어놓았습니다.

맥타거트는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첫째는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방식(A-계열)이고, 둘째는 그저 달력에 적힌 연도처럼 '사건의 순서'만 있는 방식(B-계열)입니다. 예를 들어 '2002년 한일 월드컵은 2026년 월드컵보다 먼저 일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죠. 이 순서는 100년 전이나 1만 년 뒤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고정된 진리입니다. 즉, 이 '순서'만 가지고는 시간이 째깍거리며 '흐른다'는 걸 절대 설명할 수 없어요. 시간이 흐르려면 무조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속성이 쉴 새 없이 변해야만 합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맥타거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논리적 모순을 찾아냅니다. "여러분의 '첫 출근 날'이라는 사건을 하나 떠올려보자. 그 사건은 당신이 학생이었을 때는 아득한 미래였고, 출근하는 그 순간에는 현재였으며,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는 아련한 과거다.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 현재, 미래는 물과 기름처럼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정반대의 속성이다. 그런데 어떻게 단 하나의 사건이 이 세 가지 모순된 꼬리표를 몽땅 다 달고 있을 수 있지?"
혹시 속으로 아니, 동시에 달고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순서대로 바뀌는 거잖아요!라고 반박하고 싶으신가요?
맥타거트는 씩 웃으며 이렇게 답합니다.
"바로 그 '순서대로'라는 말! 시간을 설명하려고 당신은 무의식중에 '또 다른 시간'을 끌어다 써버린 거다.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시 빌려와야 한다면, 이건 끝이 없는 무한 퇴행의 늪에 빠진 완벽한 논리적 오류다. 고로, 객관적으로 흐르는 시간이란 애초에 환상이다!"
이 철학적 도발에 칸트 같은 현상학자들도 한술 더 뜹니다.
"맞아, 시간은 저 밖의 우주에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야. 우리 인간의 뇌가 이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다가 미쳐버리지 않도록, 태어날 때부터 씌워놓은 '선험적 VR 고글(선험적 감성 형식)'에 불과해."
- 제2막: 물리학자의 반격과 볼츠만의 끔찍한 통계
철학자들의 도발에 물리학자들이 콧방귀를 뀝니다.
"무슨 철학적인 말장난입니까? 시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것도 무조건 '한 방향'으로만 맹렬하게 흐르죠!"
그들이 내민 가장 강력한 방패는 바로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었습니다. 테이블 위에서 굴러떨어진 유리컵은 산산조각이 나지만, 그 파편들이 스스로 모여 다시 온전한 컵이 되지는 않잖아요? 방을 치우지 않으면 점점 더러워질 뿐, 스스로 깨끗해지지는 않습니다. 우주는 항상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고엔트로피)로만 나아갑니다. 그러니까 이 물리 법칙 자체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완벽한 증거라는 겁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의 이 기고만장한 방패는 19세기 천재 루트비히 볼츠만의 소름 돋는 통계학 계산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 나고 맙니다.
볼츠만이 우주의 확률을 계산해 보니 이런 끔찍한 결과가 튀어나왔습니다.
"우주가 엄청나게 정돈된 상태(과거)에서 자연스럽게 흩어지며 무질서한 상태(현재)로 흘러왔을 확률을 계산해 봤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우주 전체가 완전한 쓰레기장(최대 무질서)이었는데 아주 우연히, 로또 1등에 수조 번 연속 당첨될 기적 같은 확률로 요동을 쳐서 딱 지금 이 순간만 깔끔한 상태(현재)로 만들어졌을 확률이 수학적으로 수십억 배는 더 높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여러분이 가진 어릴 적 첫사랑의 기억, 어제저녁에 먹은 김치찌개의 맛, 심지어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여러분의 '뇌'조차도. 우주 공간의 가스 먼지들이 우연히 뭉쳐서 방금 딱 1초 전에 여러분의 기억까지 완벽하게 세팅된 상태로 만들어졌을 확률이, 빅뱅부터 138억 년 동안 서서히 진화해 왔을 확률보다 훨씬 높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방금 전 허공에서 툭 튀어나온 찰나의 환상일 수 있다는 이 극단적 회의주의 앞에서, 물리학계는 공포에 질렸습니다. 결국 철학자 데이비드 알버트가 억지에 가까운 봉합책을 내놓죠
"안 되겠다. 그냥 138억 년 전 빅뱅 직후의 우주가 기적적일 만큼 엄청나게 깔끔하고 정돈된 상태였다고 무조건 못 박아버리자! 안 그러면 답이 없다!"
물리학자들은 씁쓸하게 인정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맹렬하게 흐르는 건 우주의 절대적인 법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우주가 처음 시작될 때 운 좋게 엄청나게 깔끔했다는, 그 '우연한 초기 조건' 때문에 벌어지는 거시적인 착시 현상에 불과했던 겁니다. 시간의 화살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무대는 현대 물리학의 가장 깊고 위험한 심연, '양자 중력'의 세계로 진입합니다. 여기서 쏘아 올린 방정식 하나가 지금까지의 논쟁을 전부 애들 장난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상대성이론(거시 세계)과 양자역학(미시 세계)을 하나로 통합해 보려는 물리학자들의 궁극적인 꿈, 그 과정에서 탄생한 무시무시한 수식이 있습니다. 일명 '휠러-디윗 방정식'이죠.
우주의 모든 입자, 중력, 에너지를 몽땅 집어넣고 상태 함수를 구하는 이 공식을 완성한 뒤, 칠판을 쳐다보던 학자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습니다. 이 방정식이 내뱉은 결과는 인간의 상식을 완전히 능욕하고 있었거든요.

방정식의 결과값이 수학적으로 정확히 '0'이 나왔습니다.
이 짧고도 무서운 수식이 뜻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방정식 안에는... 시간 변수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 전체의 에너지가 변하지 않고 0으로 고정되어 있으니, 진화도 없고, 쇠퇴도 없고, 당연히 시간의 흐름조차 성립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주의 가장 밑바닥, 진짜 민낯을 들여다보았더니 그곳은 과거, 현재, 미래가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영원히 겹쳐져 있는 '얼어붙은 세계'였던 겁니다.
학계는 멘붕에 빠졌습니다. 물리학계에서는 이를 가리켜 '시간의 문제'라고 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죠.
아니, 우주의 본질이 멈춰있는 한 장의 스냅사진이라면, 지금 창밖으로 굴러가는 나뭇잎, 매일 늙어가는 우리의 주름살, 이 생생한 운동과 변화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유령이란 말입니까?
절망의 끝에 내몰렸을 때, 천재들은 기어코 이 거대한 미스터리의 잠금장치를 풀어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시간은 우주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절대적인 레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입자들 간의 '관계'와 관찰자의'
무지'가 기막히게 빚어낸 경이로운 홀로그램이었습니다.
우주 밖에서 우주 전체를 바라보면 완벽하게 정지된 사진 한 장이 맞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우주 밖이 아니라 우주 '안'에 들어와 있는 구성원이잖아요?
우주 안에 있는 관찰자(나)가 시계 역할을 하는 다른 양자 입자와 '양자 얽힘'으로 강하게 연결되는 순간, 마법이 일어납니다.
우주 전체는 멈춰있지만, 얽혀있는 두 존재 사이에서는 마치 상대방의 상태가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발생합니다. 정지된 영화 필름을 안에서 렌즈로 들여다보며 필름을 돌릴 때만 영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죠.
시간은 전체 우주가 가진 속성이 아니라, 픽셀들끼리 서로를 쳐다보고 관계를 맺을 때만 튀어나오는 '창발' 현상이었던 겁니다.
더 소름 돋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알랭 콘과 카를로 로벨리라는 석학은 아예 시간의 기원을 우리의 '무식함'에서 찾았습니다.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우주의 미시적인 양자 상태 하나하나를 전부 파악하지 못할 만큼 멍청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작고 복잡해서 모든 정보를 알 수 없으니, 우리 뇌는 세상을 뭉뚱그려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불완전한 정보의 빈 공간에서 수학적으로 특수한 궤적이 튀어나오고
우리의 인지 시스템이 그것을 '시간의 흐름'으로 번역해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즉, 시간이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우리의 인지적 한계가 빚어낸 열역학적 맹점이었던 거죠
가장 최근, 끈 이론과 양자 정보학을 연구하는 최전선의 천재들은 아예 쐐기를 박아버렸습니다.
공간과 시간은 근본적인 무언가가 아닙니다. 마치 2차원 평면 스크린의 정보들이 모여 3차원 입체 홀로그램을 띄워내는 것처럼, 아주 낮은 차원에 흩뿌려진 양자 정보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연산하는 과정에서 투영된 '그림자'일 뿐이라는 겁니다.
양자 입자들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네트워크가 점점 미친 듯이 복잡해지는 그 과정. 그 데이터 연산의 깊어짐 자체가, 우리 거시 세계에서는 '시간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물리적 현상으로 번역되어 렌더링 되고 있는 겁니다.
시간이 근본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환상이라고 해서 허무주의에 빠지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무지개가 진짜 만질 수 있는 고체 덩어리가 아니라고 해서, 그 빛깔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시간은 우주의 밑바닥에 실재하는 낡아가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히 시들지 않습니다.